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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르 전쟁/전개/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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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착 == 7일간의 천지파괴가 끝나고, 전장에 새로운 해가 밝았다. 트리넬, 아릴레지아와 마베라 서부의 대부분은 웨스타시아 손에 떨어졌고, 왕가와 군 수뇌부들은 동부의 임시수도 몬타나로 거처를 옮겼다. 2월 30일 오전 8시경 왕가를 태운 C-130 수송기가 세누시 국제공항에 내리고, 임시수도에서 하는 첫 어전회의가 시작됐다. 마베라는 이제 선택을 해야했다. 군부는 둘로 나뉘었다. 육군의 니콜라 드 몬테 소장을 주축으로 한 협상파, 해군의 마르사 엘 브라가 제독을 중심으로 한 항전파가 그것이었다. 먼저 협상파의 니콜라 소장은 조건부 항복을 주장했다. 83년 여름 시점에서 이 주장은 꽤 타당해보이는 주장이었다. 당시 마베라는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어보였다. 국토의 대부분은 한랜드에게 먹혀버린지 오래고 최전방의 3개 집단군은 전멸, 잔존 병력들은 뿔뿔히 흩어져 각개격파된지 오래라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상태로 항전을 계속하다 한랜드군이 동부까지 밀고들어오면 나라고 머고 왕가의 목부터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개전 연설에서 드러났듯 웨스타시아의 목표는 완전 점령이 아닌, 몬타나 이북의 광산들과 중부의 공업지대들이었다. 때문에 협상을 통해 이것들을 때주면 나라의 명맥이라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니콜라 소장의 주장은 얼핏보면 그럴듯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이쯤에서 웨스타시아의 전쟁 계획을 다시 살펴보자. * 우선 첫째날, 둘째날에는 공군과 포병대를 이용한 대규모 초토화 작전([[쿤타치 작전]])으로 마베라의 모든 군사적 인프라(특히 방공망)를 파괴함과 동시에 한랜드군의 주특기 공중전으로 제공권을 장악하고 * 셋째날엔 장악한 공중을 통해 트리넬에 공수부대를 투입([[부르군트 작전]]), 국경선에 집중된 마베라측 병력을 수도로 교란시키고 * 넷째날에는 국경 방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바로바로싸 작전]]). 육군 320만을 북으로 진격 후 종심작전을 '''적절히''' 활용해 '''3일 안에''' 트리넬을 완전히 점령 후 '''항복문서를 받아낸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마지막의 ''''3일 안에 항복문서를 받아낸다'''' 부분이다. 브라가 중장이 꼬집은 SB계획의 유일한 허점은 이것이었다. 당시 마베라는 버블 붕괴 이후 잿더미가 된 웨스타시아에서 차량산업을 줍줍했기에[* 전자산업은 일본이 가져갔다.] 전국에 자동차 공장지대가 무수히 흩어져 있었고, 이를 뒷받침할 각종 노천광산들도 남부 몬타나 산맥 부근에 다수 포진해 있었다. 차량 공업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은 곧 땅끄 물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반면 웨스타시아는 버블 붕괴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시점이라 전반적으로 공업력도 딸리고 인구 자체도 딸렸다. 마베라 영토의 반을 먹었지만[* 말이 반이지, 실제로 점령지의 유지와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실제로 점령한 영토는 극히 일부라 봐야 한다.]먹은 영토의 대부분은 서부 평원의 곡창 지대였고 전쟁의 목표인 아크다르 산맥 너머의 공업지대과 광산들은 여전히 마베라의 손. 반년 전부터 총동원령으로 억지로 공업력을 짜내서 80만 전차대군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때 질적/양적으로 밀리는건 웨스타시아였다. 즉, 마테르전은 기본적으로 장기전으로 갈수록 마베라가 유리해지는 그림이었다. 앨빈 대통령은 이걸 알았기에 7일이라는 역사상 전무한 짧은 시일안에 최대한 빨리 수도를 점령해 왕가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 목표물을 쟁취, 초단기로 전쟁을 끝내는 구상을 짰던 것이고, 만약 계획된 시한안에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면 모든것이 잘못되는 계획이었다. 또한 브라가는 파시즘 국가의 특성을 고려하면 공업지대를 내주고 정전을 하더라도 웨스타시아는 결국 언젠가 다시 쳐들어올것이라 예측했는데, 이 상황에서 만일 웨스타시아와 정전 협상을 할시 적에게 꽤나 큰 영토를 때주는건 둘째치고 점령한 서부의 광대한 곡창지대에서 나온 농산물들을 수출해 경제회복 및 중공업을 재건할 시간을 제공, 향후 10,20년안에 일어날 2차 전쟁에 크나큰 고지를 내어주는 거나 다름업다는게 브라가 제독의 주장이었다. 국왕은 브라가의 손을 들어줬다. 83년 3월 1일. 마베라 외무성은 웨스타시아의 협상 제의를 거부했다. 앞서 말한 대로 최대한 빠른 종전을 원한 웨스타시아는 약간 당황했다. 한편 웨스타시아군 점령지에서는 잔존 마베라군들을 토벌하기 위한 산발적인 교전을 계속하느라 진격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83년 3월부터 마베라군은 자오그란트 동부, 나르덴, 노르트란트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광할한 길이의 참호선을 건설했다. 마침 3월 3일부터는 2월에 끝났던 장마가 다시 찾아와 전선 전역이 진흙으로 뒤덮혔다. 3주간 이어진 장마로 땅이 질척거려 땅끄들이 진격을 못하니 한랜드군의 전격전 전술이 돈좌, 공세가 막을 내리고 전선이 고착화되었다. 당황한 한랜드군은 전쟁 전에 연구해뒀던 인공강우 프로젝트 '나푸사 작전'을 실행, 600만톤이 넘는 HINA 분무액[* 웨스타시아 연방 기술개발부 소속 R.J. 라인하르트 박사가 개발해낸 물건으로, 본디 수증기 결집용 원소로 아이오딘화'''은'''을 뿌려야 했기에 비용이 천문학적이던 인공강우 기술을 기존의 7분의 1 비용으로 쓸수있게 해준 용액이다. ]을 전선에 뿌려 공기중 수증기를 한방에 응결, 3~4일만에 장마를 끝내려 했지만 계산 실수와 마베라 정보부 & 루이나 MIA의 분무액 생산라인 사보타쥬[* HINA 분무액의 생산은 스타인먼 화학이 담당했는데, 본토의 공장들은 독가스 만드느라 이미 바빠서 주로 점령지의 로동력을 이용해 분무액을 생산했던게 화근이었다. ]가 겹쳐 뿌려진 불량용액이 역효과를 유발. 예보대로면 3월 중순에 그칠 예정이던 장마가 7월까지 연장되버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굳은 날씨때문에 그렇게 한달내내 내린 장마로 양측의 기갑 전력들이 대부분 봉쇄되어버리면서 남은건 보병부대 뿐이었다. 그렇게 솔로몬, 마슈레텐, 에크레멘 전투에서 1차대전 이후 봉인되어있었던 참호전이 반백년의 세월을 넘어 부활하고야 말았다. 웨스타시아군은 여전히 미미하게 공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3달이 넘는 기간동안 전선에 변화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하루에 수킬로미터 진격에 그쳤으며 가끔은 몇미터씩 진격했던 때도 있었다. 이런 질척이는 전황은 솔로몬 공방전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솔로몬 포위전|도시 하나 먹는것]]에 양군 총합 '''30만명'''[* 민간인 피해를 제외하고 30만명이다.]의 희생자가 발생할 정도였다. 이렇듯 양측의 손해가 극심했기에, 브라가 제독은 쏟아지는 반전 여론에 한동안 경질당할뻔 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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